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DNA는 우주의 언어다 : 생명에 새겨진 우주의 메시지 - 코스모스 2장 (2)

by 아너스88 2025. 8. 8.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때로 이런 생각에 잠긴다. 저 광막한 우주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일까? 하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이런 우리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세이건의 이 말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깊은 통찰이다. 우리는 우주의 관찰자가 아니라 우주 그 자체의 구현체다.

생명의 가장 근본적 언어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에서 칼 세이건은 생명의 신비로운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DNA다. 놀랍게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 네 개의 문자로 구성된 언어를 공유한다. DNA를 구성하는 네가지 주요 염기인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 이 네 개의 화학 문자가 바로 생명의 알파벳이다.

인간의 언어가 26개의 알파벳으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DNA는 단 네 개의 문자로 박테리아에서 푸른 고래까지, 미세한 이끼에서 거대한 세쿼이아까지 모든 생명의 설계도를 기록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주가 생명에게 부여한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정보 전달 체계다.

세대를 넘나드는 우주의 메신저

"우리는 오랫동안 유전자와 뇌와 도서관에 어마어마한 기억을 축적해 왔다." 세이건이 말한 이 '유전자 도서관'은 38억 년간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정보 전달의 연속이다.

DNA는 단순한 유전 정보의 저장고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메신저이며, 우주 역사의 증인이다.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이 분자적 메시지는 생명이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다.

"유전자 도서관은 우리 몸 구석구석이 각각 알고 있어야 할 정보를 이렇게 모두 소장하고 있다. 태곳적부터의 정보가 속속들이 빠짐없이 중복되어 유전자 속에 들어있다."

이는 우리 세포 하나하나가 지구 생명 전체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의미다.

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생명

칼 세이건이 가장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별의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와 여타 생물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적색 거성, 청색 거성의 중심부에서 만들어졌다."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DNA를 구성하는 탄소, 질소, 산소, 인 모두가 별의 중심에서 핵융합으로 만들어진 원소들이다. 우리 몸속의 DNA는 그 자체로 우주 진화의 산물이며,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의 역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핵산(核酸, 영어: nucleic acid)은 알려져 있는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생체고분자 또는 작은 생체분자이다. 핵산이라는 용어는 DNA와 RNA를 모두 포함한다.
핵산은 알려져 있는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작은 생체분자이다. 핵산이라는 용어는 DNA와 RNA를 모두 포함한다.

생명의 우주적 필연성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이 질문의 답은 DNA 속에 숨어 있다. DNA의 정교함과 보편성은 생명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는 우주의 물리 법칙과 화학 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정보 전달 체계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생명이 탄생했다면, 그들 역시 비슷한 분자적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 허용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인식하는 DNA의 기적

가장 놀라운 것은 DNA가 단순히 생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의식을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쳐 DNA는 뇌라는 놀라운 기관을 설계했고, 이 뇌는 우주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도, 원자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학자의 열정도, 모두 DNA가 만들어낸 뇌의 활동이다. 즉, 우주가 DNA라는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DNA가 단순히 생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쳐 DNA는 뇌라는 놀라운 기관을 설계했고, 이 뇌는 우주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골몰하는 것은 곧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과 호기심도, 원자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학자의 열정도, 모두 DNA가 만들어낸 뇌의 활동이다. 즉, 우주가 DNA라는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연결의 메시지

앤 드루얀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 이런 우주적 연결의 의미를 더욱 깊이 탐구한다. 그녀는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바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DNA는 이런 연결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8% 이상 같고, 인간과 효모조차도 기본적인 생명 과정에서는 동일한 유전적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언어로 쓰인 우주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다.

DNA는 과거의 역사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매 순간 일어나는 DNA 복제와 돌연변이는 생명이 계속 진화하고 변화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인간의 문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DNA가 만들어낸 뇌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우주를 탐사하며, 생명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해 나간다.

그림 출처 : 한겨례, 인간·침팬지, 짝짓기 차이로 달라졌다?
그림 출처 : 한겨례, 인간·침팬지, 짝짓기 차이로 달라졌다?

경외감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이 약속한 이 만남은 바로 DNA를 통해 이루어진다.

DNA는 우주의 언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언어로 쓰인 살아있는 서사시다. 38억 년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생명의 대서사에서 우리는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며 느끼는 그 경외감은 사실 우주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DNA라는 언어를 통해 우주는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깨닫게 되었다. 이보다 더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참고 문헌:

  • 칼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