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만큼은 변하지 않는 본질일까요? 오늘은 한국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에 나타난 감정 표현을 비교 분석해보며 시대를 초월한 감정의 보편성과 시대별 감정 코드의 변화를 살펴보려 합니다.
1. 고전 소설 속 감정 표현
가. 홍길동전
17세기에 창작된 최초의 국문소설인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에 대한 비판과 사회 개혁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타난 감정 표현은 주로 신분제 사회에서 오는 억압과 분노,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관련이 깊습니다.
홍길동의 주요 감정어를 살펴보면:
- 한(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로서의 한과 설움
- 분노: 신분 제도에 대한 분노와 불만
- 결연함: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는 강한 의지
- 희망: 이상 사회 건설에 대한 희망
이러한 감정 표현들은 당시 사회적 배경과 맞닿아 있으며,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들은 신분제라는 제도적 장치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홍길동의 내면적 갈등은 소설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며, 이를 통해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가 강하게 표출됩니다.
나. 춘향전
조선 후기에 형성된 '춘향전'은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정절을 주제로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감정 표현이 나타나는데, 특히 사랑과 이별, 그리고 정절을 지키려는 의지에 관련된 감정어가 풍부합니다.
춘향전의 주요 감정어:
- 사랑: 이몽룡과 춘향의 순수한, 신분을 초월한 사랑
- 슬픔: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
- 절개: 정절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
- 분노: 신관 사또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저항
- 희열: 재회의 기쁨과 환희
춘향의 감정은 '절개'라는 유교적 가치와 결합하여 더욱 강렬하게 표현됩니다. 특히 오리정 이별 장면이나 신관 사또에게 항거하는 장면에서는 감정의 격렬함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인간 본연의 사랑과 항거의 감정을 보여줍니다.
2. 현대 소설 속 감정 표현
가. 82년생 김지영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성차별적 요소를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 나타난 감정 표현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요 감정어:
- 공포: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적 공포
- 피로감: 지속적인 차별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
- 당황: 예상치 못한 차별 상황에서의 당혹감
- 좌절: 사회적 제약에 부딪히는 좌절감
- 분노: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
소설 속 김지영의 감정은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집단적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나. 파친코
이민진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민자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이 다층적으로 표현됩니다.
주요 감정어:
- 소외감: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소외감
-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 인내: 차별과 어려움을 견디는 인내
- 정체성 혼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
- 희망: 어려움 속에서도 꿈꾸는 더 나은 미래
'파친코'에서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작가는 이민자로서 겪는 발악과 체념,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선 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3. 시대를 초월한 감정과 시대별 감정코드의 변화
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감정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 분노: 홍길동의 신분 제도에 대한 분노, 춘향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분노, 김지영의 차별에 대한 분노
- 좌절과 희망: 모든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제약에 좌절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함
- 사랑과 그리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이런 감정들은 시대를 초월해 지속적으로 나타남
나. 시대에 따른 감정코드의 변화
시대별로 감정 표현에 있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습니다:
- 감정 표현의 직접성
- 고전 소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감정 표현이 절제되거나 우회적으로 표현됨
- 현대 소설: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감정 표현이 증가함
- 집단적 감정에서 개인적 감정으로
- 고전 소설: '한'과 같은 집단적 정서가 중요하게 다루어짐
- 현대 소설: 개인의 고유한 감정 경험이 더 세밀하게 묘사됨
- 제도적 억압에서 구조적 억압으로
- 고전 소설: 신분제와 같은 명시적인 제도에서 비롯된 감정이 주를 이룸
- 현대 소설: 보이지 않는 구조적, 일상적 차별에서 오는 감정이 부각됨
- 정체성에 관한 감정의 변화
- 고전 소설: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정체성 고민
- 현대 소설: 보다 복합적인 정체성(젠더, 국적, 문화적 배경 등)에 관한 고민
4. 결론: 오늘날에도 유효한 고전문학 속 감정
고전문학 속 감정은 그 표현 방식과 사회적 맥락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인간 본연의 감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홍길동의 한과 분노, 춘향의 사랑과 절개는 형태를 달리하여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다만 현대 소설에서는 감정이 더욱 세분화되고, 개인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감정의 원인이 명시적인 제도보다는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와 상황은 변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과 그 감정이 표출되는 근본적인 이유 - 불공정한 대우, 사랑과 인정에 대한 갈망, 자아실현의 욕구 등 - 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수백 년 전의 고전문학 속 감정에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고전문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참고문헌
- 김제환, "성격분석을 통해서 본 홍길동전", 정신건강임상심리뉴스, 2020.06.18.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위키백과, 2025.
- "한승곤, "여성 현실 잘 표현 vs 남자도 힘들다 '82년생 김지영' 女·男 갈등", 아시아경제,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