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특히 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에 이르렀을 때, 나는 우주의 광활함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깊은 쓸쓸함에 빠져든다. 이 장은 단순히 화성이라는 천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품어온 꿈과 좌절,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에 대한 시적 기록이다.
화성은 오랫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붉은 행성,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딴 이 천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의 무대가 되어왔다. 칼 세이건은 예로부터 화성은 미신과 공상의 대상이었다라고 한다. 이 표현은 인류가 화성을 바라보는 복잡한 감정이 모두 담겨 있다.
화성, 지구의 쌍둥이 형제
화성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칼 세이건은 그 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화성은 지구에서 그 표면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극관이나, 하늘에 떠나니는 흰 구름, 맹렬한 흙먼지의 광풍. 계절에 따라 변하는 붉은 지표면의 패턴, 심지어 하루가 24시간인 것까지 지구를 닮았다"
이처럼 화성은 언뜻 보기에 지구와 너무나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곳에도 생명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화성 탐사의 역사는 인류의 꿈과 과학적 엄밀함이 충돌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19세기 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관측한 '운하'는 퍼시벌 로웰의 상상력을 통해 화성 문명의 증거로 둔갑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환상을 하나씩 깨뜨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성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바이킹의 도착, 그리고 새로운 시작
1976년 7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바이킹 1호와 2호가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화성은 그저 하나의 장소일 뿐이었다. 머리가 반백이 된 광산 채굴꾼이 노새를 끌면서 모래 언덕 뒤에서 나타나기라도 할 것 같았다."
이 표현에는 과학자의 냉철함과 시인의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화성은 더 이상 신화 속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바이킹 탐사선이 보내온 화성의 모습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랐다. 메마른 사막, 희박한 대기, 극심한 추위. 그곳은 생명이 살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왜 하필 화성인인가? 토성인이면 어떻고, 명왕성인이라면 뭣이 문제란 말인가? 화성인만 두고 그토록 열렬히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 속에는 우주적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가능성의 행성, 화성
칼 세이건이 화성을 특별하게 여긴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지구와 닮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행성의 운명이 얼마나 극적으로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한때는 물이 흘렀을지도 모르는 곳, 어쩌면 생명이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곳이 지금은 차갑고 메마른 사막이 되어버렸다.
앤 드루얀은 남편 칼 세이건의 정신을 이어받아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 이렇게 쓴다.
"최종 목적지, 즉 절대적 진리를 가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과학이 성스러운 탐색에 걸맞은 방법론이 되어주는 이유다. 방대한 우주는 - 그리고 그 방대함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은 - 교만한 자에게는 자신을 열지 않는다. 코스모스ㅡ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중 아는 자만을 온전히 받아 준다."
이것이 바로 화성 탐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탐구하고, 상상해야 한다.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는 여러 차례 반복 연주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칼 세이건의 이 표현은 화성 탐사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희망과 좌절,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해왔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화성은 이제 단순한 붉은 점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협곡과 죽은 화산, 극지방의 얼음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래폭풍을 가진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계다. 최근의 화성 탐사 임무들은 과거에 물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다. 어쩌면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주적 관점에서 본 우리의 위치
칼 세이건은 항상 우주적 관점을 강조했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개의 별이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서 지구만이 생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화성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준다. 동시에 희망도 준다.
화성 탐사는 단순히 다른 행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고,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며,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인간은 감정이 연루되면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웃 행성에 지성을 갖춘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보다 더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칼 세이건의 이 말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꿈꾸고 탐구할 것이다.
마치며 - 가능성의 행성
『코스모스』 5장을 읽으며 나는 화성이 단순한 천체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류의 꿈과 과학적 탐구정신이 만나는 무대다. 비록 현재의 화성은 차갑고 메마른 사막이지만, 그것이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언젠가 인류가 다른 화성에 발을 디딜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칼 세이건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 신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된다. 화성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희망과 가능성의 노래다.
우주의 바다에서 우리는 이제 겨우 발가락을 적신 수준이다. 하지만 그 작은 시작이 언젠가는 거대한 항해로 이어질 것이다. 화성은 그 첫 번째 기항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코스모스의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작은 이야기를.
참고문헌
- 칼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