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 마당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이 있다. 별들이 반짝이는 그 순간, 마치 누군가가 하늘이라는 거대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400년 전 독일의 한 천문학자도 나와 같은 상상을 했다는 것을.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이 문장으로 우리를 우주의 품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늑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과학자의 고백이 아니다. 한 인간이 우주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의 고백이다. 그리고 17세기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도 똑같은 전율을 느꼈다.
천 년의 어둠 속에서 피어난 별빛
칼 세이건은 가슴 아픈 역사를 들려준다.
"고대에 한창 꽃피웠던 과학 문명은 교회의 억압 아래 1,000년 동안의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천 년. 인간의 호기심이 억눌린 천 년의 세월이 얼마나 길고 답답했을까.
그러나 1571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요하네스 케플러. 가난하고 병약했던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우주를 향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칼 세이건은 이렇게 적었다.
"한 어린 신학도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갈망은 장차 틀에 박힌 중세 유럽의 사상 체계를 깨뜨리는 동력이 될 터였다."
케플러가 처음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상상해본다. 그는 "완전한 형상과 코스모스의 영광을 맛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고백을 남겼다.
"기하학은 천지 창조 이전부터 있었다. 기하학은 신의 뜻과 함께 영원히 공존한다. …… 기하학은 천지 창조의 본보기였다. …… 기하학은 신 그 자체이다."
이것은 단순한 수학 공식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우주의 언어를 발견한 한 영혼의 환희의 노래였다.
여섯 개의 행성, 다섯 개의 비밀
케플러가 살던 시대, 밤하늘에는 여섯 개의 떠돌이별이 있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칼 세이건은 케플러의 질문을 이렇게 전한다.
"케플러는 행성들이 왜 여섯 개뿐이어야 하는가 하고 깊이 고민했다."
스무 개면 어떻고 백 개면 어떻단 말인가? 왜 하필 여섯 개인가?
이 질문은 그 누구도 던져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마치 물고기가 처음으로 '왜 나는 물속에 있는가?'라고 묻는 것처럼 혁명적이었다. 케플러는 플라톤의 정다면체에서 답을 찾았다고 믿었다. 다섯 개의 완벽한 입체 -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이것들을 차곡차곡 포개면 행성들의 궤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발견에 너무 기뻐서 "코스모스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치 우주의 설계도를 발견한 것처럼 황홀해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관측 데이터는 그의 아름다운 이론과 맞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케플러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를 당대 최고의 관측가 티코 브라헤에게로 이끌었다.
깨어진 원, 태어난 음악
티코 브라헤의 방대한 관측 자료 앞에서 케플러는 충격에 빠졌다.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니! 2,000년 동안 인류가 믿어온 '완벽한 원'의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피타고라스학파와 달리 케플러는 현실 세계에 대한 실험과 관측의 중요성을 깊이 신뢰했기 때문에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 관한 상세한 관측 자료에 따라 원 궤도 운동이라는 전제를 포기했다... 결국 피타고라스학파의 생각 때문에 그의 연구는 10년 이상이나 지체됐던 것이다."
10년. 자신이 믿던 완벽한 원의 환상을 버리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 10년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케플러는 타원 궤도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행성들의 음악이었다.
칼 세이건의 설명이 가슴을 울린다. 케플러는 "행성들에 라틴계 음정인 도.래.미.파.솔.라.시.도를 붙이고, 이들의 조화로운 운행원리를 '소리의 화음'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화음 구도 속에서 지구의 음계는 '미와 파'였다."
미와 파. 우리가 사는 이 푸른 행성이 우주에서 연주하는 음은 미와 파란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건 왜일까.
영원을 향한 마지막 춤
케플러는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행성들에서 음악을 들었다. 태양에 가까이 갈 때는 빨라지고, 멀어질 때는 느려지는 그 움직임이 마치 현악기의 글리산도처럼 들렸다. 수성은 소프라노처럼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금성은 단조로운 알토처럼, 목성과 토성은 장엄한 베이스처럼 각자의 파트를 연주했다.
이것은 과학인가, 예술인가? 칼 세이건은 둘 다라고 대답한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일생을 바쳐 추구한 목표는 행성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천상 세계의 조화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은 "그가 죽고 36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는데... 아이작 뉴턴의 연구를 통해서다."
케플러가 직관으로 느꼈던 우주의 음악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과학적 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케플러가 들었던 그 음악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
우리도 들을 수 있다, 별들의 노래를
[그림 5 추천: 현대의 전파망원경이 포착한 펄서의 신호를 시각화한 이미지 - 마치 우주의 심장박동 같은]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3장에서 "천문학의 발전은 우리의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꿔 왔다"고 썼다. 케플러 이후 400년,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는 진공이고,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전파망원경으로 펄서의 규칙적인 신호를 듣는다. NASA는 보이저 호가 수집한 행성들의 전자기 신호를 음악으로 변환한다. 토성의 고리가 만드는 전파를 들으면 정말로 음악처럼 들린다. 케플러의 꿈이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케플러를 생각한다. 그가 들었던 우주의 음악은 어떤 멜로디였을까? 그가 느꼈던 그 전율은 어떤 것이었을까?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의 이 말이 가슴 깊이 울린다.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 앞에 서 있다. 케플러가 그랬듯이, 칼 세이건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 미지의 세계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오늘 밤,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스마트폰을 끄고, 도시의 소음을 잠시 잊고, 그저 별들을 바라보자. 귀를 기울이면 들릴지도 모른다. 케플러가 들었던 그 음악이. 지구가 연주하는 '미와 파'의 선율이. 우주가 들려주는 영원의 교향곡이.
그것이 바로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과학은 차가운 공식이 아니라 뜨거운 열정이며, 우주는 침묵의 공간이 아니라 음악으로 가득한 무대라는 것을.
별들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아직 그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참고문헌
- 칼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