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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의 음악을 듣다 :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주의 하모니 - 코스모스 3장(2)

by 아너스88 2025. 8. 13.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베란다에 나갔다. 도시의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장이 떠올랐다.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라는 제목처럼, 그 순간 나는 우주가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천구의 음악을 상상한 피타고라스

코스모스 3장은 천문학의 발전이 우리의 우주관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보여준다. 그 시작점에는 피타고라스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직각삼각형의 정리를 발견한 그 수학자 말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단순한 수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처음 부른 사람이었고, 행성들이 움직이며 일종의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 수학 시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외우며 얼마나 머리가 아팠던가. 그런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 고리타분해 보이던 수학자가 사실은 낭만적인 몽상가였다는 것을.

피타고라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상했다. 저 별들이, 저 행성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있다면? 그는 이것을 '천구의 음악'이라 불렀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우주 어딘가에선 분명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을 거라고.

나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새벽녘 고요한 시간, 창밖을 보며 귀를 기울이면 정말로 별들의 노래가 들릴 것만 같다. 아마 피타고라스도 나처럼 잠 못 드는 밤, 하늘을 보며 그런 상상에 빠졌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스타일의 천구의(Armillary Sphere)
고대 그리스 스타일의 천구의(Armillary Sphere) [그림출처 : 구글이미지]

케플러가 계산한 행성의 화음

시간은 흘러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가 등장한다. 케플러는 행성들에 라틴계 음정인 도.래.미.파.솔.라.시.도를 붙이고, 이들의 조화로운 운행원리를 "소리의 화음"에 비유했다. 케플러는 피타고라스의 상상을 과학으로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우주적 관점을 갖게 되기까지 우리는 하늘을 보고 머릿속에서 모형을 구축해보고 그 모형에서 귀결되는 관측현상들을 예측하고 예측들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예측이 실제와 맞지 않을 경우 그 모형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모형을 다듬어 왔다. 생각해보라. 태양은 벌겋게 달아오른 돌멩이였고 별들은 천상의 불꽃이었으며 은하수는 밤하늘의 등뼈였다. 이론적 모형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또 파기하는 과정을 뒤돌아보면서,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용기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아리스타르코스 이래 과학자들의 임무는 우주 드라마의 중심 무대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한발씩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집념인가. 별들의 움직임에서 음악을 찾으려 했던 그들의 노력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에서 리듬을 찾고, 발걸음에서 멜로디를 듣는 연인처럼.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 위키백과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 위키백과

미신의 안개를 걷어낸 용기

하지만 이 아름다운 여정은 쉽지 않았다. 칼 세이건은 쓴다.

"고대에 한창 꽃피웠던 과학 문명은 교회의 억압 아래 1,000년 동안의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천 년의 침묵. 상상해보라. 별을 보며 꿈꾸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그 긴 세월을.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중세 후기가 되자 아랍 학자들을 통해 보존되었던 고대 과학의 목소리가 희미한 메아리가 되어 유럽의 교과 과정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이들은 모두 시대의 편견과 싸워야 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목숨을 건 도전이었던 시절. 그들은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사과와 달이 들려준 비밀

그리고 마침내 뉴턴이 나타났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사과나무 아래서 쉬던 뉴턴의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졌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고. 사과를 떨어뜨리는 힘과 달을 지구 주위로 돌게 하는 힘이 같다는 것을.

칼 세이건은 뉴턴의 말을 빌려 과학의 본질을 설명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의 신비한 본성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고유한 행동 양식은 바로 그 본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라고 누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 관한 설명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온갖 현상들에서 두세 가지의 일반 원리를 먼저 찾아내고, 모든 물체들의 성질과 그들의 상호 작용이 앞에서 찾아낸 원리들에서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위대한 이해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 아이작 뉴턴, 『광학』"

나는 가끔 공원을 산책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그때마다 뉴턴을 떠올린다. 이 작은 나뭇잎과 저 거대한 달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니. 우주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우리가 찾는 하모니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3장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겨룸이라니. 하지만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춤에 더 가깝다. 우주와 함께 추는 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할 때, 우주도 우리에게 조금씩 비밀을 들려준다.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 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밤, 별을 보며

어제 읽은 코스모스 3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희미하게만 보이는 별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저 별들이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궤도로 춤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피타고라스가 상상한 천구의 음악이, 케플러가 계산한 행성의 화음이 거기 있다.

물론 진공인 우주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우리 마음의 귀로는 들을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에서 빛을 보고, 아이의 웃음에서 희망을 듣듯이, 우리는 별들의 춤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장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는 그저 천문학 역사책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꾸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었는지, 어떻게 미신을 과학으로 승화시켰는지에 대한 인류의 성장 일기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잠시 창밖을 보자. 그리고 귀를 기울여보자. 어쩌면 당신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피타고라스가 들었던, 케플러가 계산했던, 칼 세이건이 사랑했던 그 천체의 음악을.

별빛이 당신의 꿈에도 스며들기를.

도시의 야경과 별이 함께 보이는 사진
도시의 야경과 별이 함께 보이는 사진 [그림출처 : 중앙일보 2015.05.06]

 


참고문헌: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