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천국과 지옥 :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주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 코스모스 4장 (1)

by 아너스88 2025. 8. 16.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설렘을 느꼈을 것이다. 그 무수한 별빛 사이로 스며드는 경외감과 함께,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때로는 더 절실한 질문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푸른 행성은 과연 축복받은 천국일까,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옥일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4장 '천국과 지옥'을 펼쳐 드는 순간, 우리는 이 가슴 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탐구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순례길이다.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 밤하늘의 은하수. 강릉/박종식 기자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 밤하늘의 은하수. 강릉/박종식 기자

 

우주 속 떠도는 보석, 그러나 얼마나 연약한지

칼 세이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뜻한 위로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진실로부터 출발한다. 지구는 아주 작고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소행성의 충돌, 공전 궤도의 미세한 변화 같은 우주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인류의 자기 파멸적인 행동에 고통받고 있다. 이 것에 관한 구절을 읽는 순간,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가슴을 스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 아침마다 해가 떠오르고 저녁마다 노을이 물드는 이 아름다운 터전이 사실은 광활한 우주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존재라니.

1908년 시베리아의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그 거대한 폭발을 상상해보라.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천체 하나가 순식간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렸다. 만약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도시 위에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우주는 아름답다. 하지만 동시에 무섭도록 차갑고 무정하다. 우리의 작은 행성을 향해 언제든 예상치 못한 재앙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라는 보금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그림출처 : 구글 이미지]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그림출처 : 구글 이미지]

금성의 눈물과 지구의 미소

가끔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유독 밝게 빛나는 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성, 우리의 이웃 행성이다. 고대인들은 그 아름다운 빛 때문에 금성을 '샛별' 또는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진실은 참으로 끔찍하다.

세이건의 붓끝에서 그려지는 금성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다. "지옥 같은 지표열과 압력에 시달리는" 행성. 두터운 이산화탄소 구름에 갇혀 표면 온도가 460도에 달하는 곳. 만약 우리가 그곳에 발을 디딘다면 순식간에 납처럼 녹아버릴 것이다. 아름다운 샛별의 정체가 이토록 잔혹한 세계라니, 우주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구는 어떨까? 창밖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속삭임, 아침이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이 모든 일상의 기적들이 사실은 우주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물 같은 것들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딱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물이 얼지도 끓지도 않는다. 대기는 우리를 우주의 차가운 진공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바다는 기온을 조절해준다. 이 모든 조건들이 마치 누군가 세심하게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세이건은 여기서 우리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어깨에 얹어 준다 : 또한 지구를 천국으로 만들지, 금성 같은 지옥으로 만들지는 인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이 아름다운 행성의 거주자가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이라는 것을.

금성 지표면 이미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ASA
금성 지표면 이미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ASA

케플러가 들었던 우주의 선율

때로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17세기로 돌아가 케플러의 서재에서 그가 밤새도록 끙끙거리며 계산하던 모습을 엿보고 싶다. 코스모스 3장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에서 세이건이 그려낸 케플러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우주의 비밀스러운 음악을 듣고자 했던 시인이었다.

케플러는 행성들의 움직임에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선율을 발견했다. 각각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면서 만들어내는 리듬이 마치 천상의 교향곡 같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 우주의 질서 속에서 우리 지구는 '미와 파'의 음을 담당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상상인가.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사실은 우주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한 연주자라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자신만의 선율을 우주에 울려 퍼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지구가 지금 연주하고 있는 선율은 아름다운 하모니일까, 아니면 불협화음일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행성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마음이 만드는 천국, 마음이 부르는 지옥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 앤 드루얀이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깊이 있게 우리 마음을 울린다. 우리가 있는 곳은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을 곱씹을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천국과 지옥이란 어딘가 멀리 있는 신비로운 장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관점과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창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 순간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으로 마음이 어둠에 잠겨 있다면, 같은 공간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 행성은 우주에서 보기 드문 천국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의 탐욕과 무관심이 쌓여간다면 언젠가는 금성처럼 황폐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 세이건의 경고

1980년,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다본 미래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기후변화, 환경파괴, 핵전쟁의 위험... 지금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그는 이미 40년 전에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성은 인류에게 공포감과 함께 경외심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마음을 홀리는 망령된 미신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늘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혜성은 영원불변하고 질서정연한 위대한 코스모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존재로 여겨졌다."

 

옛 사람들은 하늘에서 꼬리를 끌며 나타나는 혜성을 보며 두려워했다. 그것이 재앙의 전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지금 지구를 가장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자동차 배기관에서 나오는 매연,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가는 숲들... 이 모든 것들이 혜성보다 더 무서운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그래도 남은 것은 희망이다

하지만 세이건의 메시지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한 희망의 불빛으로 우리를 이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구의 운명을 만들어간다.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는 것, 전등을 끌 때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이런 소소한 실천들이 쌓여서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청정에너지를 개발할 수도 있고, 환경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복원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별빛 아래서 꿈꾸는 우리의 사명

칼 세이건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은 단순한 과학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먼지만큼도 작은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작은 점에는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하는 생명들이 가득하다. 아직까지 우리가 아는 한, 이런 기적은 우주에서 오직 여기서만 일어나고 있다.

세이건의 천국과 지옥 이야기는 종교적 교리를 넘어선 깊은 철학적 성찰이다.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우주를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또 어디 있을까?

오늘 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별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케플러가 들었던 행성의 음악을 상상해보자. 우주라는 거대한 교향곡 속에서 지구가 연주하는 선율이 아름다운 하모니가 될지, 아니면 귀를 찢는 불협화음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세이건이 40여 년 전에 던진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우주의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창조자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지구의 운명을, 아니 어쩌면 우주의 미래를 써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국도 지옥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아름다운 지구
아름다운 지구 [그림출처 : 구글 무료 이미지]


참고문헌:

  • 칼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