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펼쳐들 때마다 느끼는 것은 200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재,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실험실에서 창조한 괴물은 단순한 공상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 딜레마의 예언서처럼 다가온다.
창조주의 무책임한 욕망
프랑켄슈타인의 핵심은 과학적 발견에 대한 무한한 욕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 회피의 문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만든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소설 속 괴물의 절규는 이러한 창조주의 무책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는 번민에 빠져 “내가 생명을 얻은 그날이 증오스럽다!”라며 울부짖었소. “저주스러운 창조자! 어째서 당신조차 역겨워 등을 돌릴 만큼 흉악한 괴물을 빚었습니까? 신은 연민을 갖고 자기 모습을 따라 아름답고 매혹적인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소.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추악한 부분을 닮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끔찍하오. 사탄에게는 그를 숭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지만, 나는 고독할 뿐 아니라 혐오의 대상일 뿐이오.”
이 대목은 창조 행위 자체의 문제보다는 창조 후의 책임 문제를 부각시킨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체를 만들어놓고는 그 존재가 흉측하다는 이유로 도망쳐버린다. 이는 현대의 과학자들이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고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과학 발전의 양면성과 윤리적 성찰
메리 셸리는 작품을 통해 과학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한 말은 이러한 성찰을 잘 보여준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고향을 세상 전부로 알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본성이 허락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해지려는 열망을 품은 자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지 말입니다. "
이 인용문은 과학적 지식 추구 자체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가 허락하는 것보다 더 위대해지려고 갈망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이다. 현대의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견된다. 과학자들이 기술적 가능성만을 추구하며 윤리적 한계를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반생명윤리적 측면에 대한 우려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생명과학기술이 인류복지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자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존재의 외로움과 사회적 배제의 비극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괴물의 존재론적 고독이다. 창조주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배척당한 괴물은 근본적인 소속감의 부재로 고통받는다.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에게 호소하는 장면은 이러한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듯 당신의 선함과 연민을 간청하는 그대의 피조물을 호의로 볼 수 없단 말인가요? 나를 믿어주시오, 프랑켄슈타인. 나는 착한 존재였고, 나의 영혼은 사랑과 인간애로 빛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혈혈단신, 비참한 고독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나의 창조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내게 하등 빚진 것 없는 당신의 동족에게서 무슨 희망을 본단 말입니까? 그들은 나를 발길로 차고 미워합니다. 나의 안식처는 불모의 산과 음울한 빙하뿐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괴물이 본래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배제와 창조주의 버림이 그를 악한 존재로 만들었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는 괴물의 고백은 환경이 존재의 본성을 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같은 비인간적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우리가 만든 기술적 존재들을 단순히 도구로만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형태의 권리나 존중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현실적 쟁점이 되고 있다.
현대적 해석 : AI와 생명공학 시대의 프랑켄슈타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켄슈타인의 경고는 더욱 현실적이 되었다. 유전공학, 생명공학, 기계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여성의 출산을 배제한 인공적 생명창조가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 속의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인간복제 기술, 인공장기, 그리고 인간과 같이 사고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메리 셸리가 200년 전에 제기한 윤리적 딜레마를 우리 앞에 그대로 되살려놓았다.
특히 현재의 IT 개발혁신가들에게 이 작품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술의 혁신에만 몰두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않는 태도는 프랑켄슈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발전은 이롭다는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이 이룬 기술 혁신에만 취해있는 개발자들이 많다는 지적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에 후회나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요구된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이 존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순간 남은 사람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과학 윤리의 필요성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의 반생명윤리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과학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윤리 규범인 공유주의, 보편주의, 무사심, 가치중립, 의무와 책임 중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특히 의무와 책임 부분에서 심각한 윤리적 결함을 보인다.
현대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타율적인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자기증여의 내적 요구를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책임이어야 한다.
창조의 의미와 성찰
흥미롭게도 메리 셸리는 남성 과학자가 여성의 고유한 임신과 출산 능력을 과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그려냄으로써 창조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생명창조과정을 당시 부인과 의학서의 임신 출산 담론의 언어로 묘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자연적 창조와 인공적 창조 사이의 근본적 차이, 그리고 창조 행위에 수반되어야 할 돌봄과 사랑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결론 : 우리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을 피하기 위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고전문학을 넘어 현재진행형의 예언서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급속히 발전하는 지금,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프랑켄슈타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학 발전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적 가치를 해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책임지는 자세다.
창조의 행위에는 반드시 창조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기술적 존재들, 인공지능에서 유전자 조작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 발전의 길이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자 개인의 양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찰적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