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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도 탄생했을까? : 지구 생명체의 진화가 던지는 우주적 질문 - 코스모스 2장 (5)

by 아너스88 2025. 8. 11.

어둠이 짙어가는 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멀고 먼 별들 중에서도 지구처럼 생명이 숨 쉬는 곳이 있을까? 이 질문은 인류가 우주를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품어온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설레는 질문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에서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40억 년 전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진화해온 생명의 역사를 살펴보며, 세이건은 우리에게 더 큰 그림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생명의 드라마가 과연 우주에서 유일한 것일까?

그림 출처 : 조선일보, 2018.07.25 밤하늘 별 빛 가득한 은하수를 바라보며
그림 출처 : 조선일보, 2018.07.25 밤하늘 별 빛 가득한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구 생명의 단조로운 선율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놀랍도록 유사한 화학적 원리에 따라 작동된다. DNA와 RNA라는 핵산을 통해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며, 같은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세이건은 이를 음악에 비유하며 "지구의 생물학은 단성부, 단일주제 음악만 우리에게 들려준다"고 표현했다.

이는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에서 하나의 악기만이 혼자 연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지구 생명의 이 단조로운 선율은 분명 아름답고 복잡하지만, 우주라는 무대에서 볼 때는 너무나 제한적으로 느껴진다. 4십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구에서 벌어진 진화의 실험은 결국 하나의 화학적 기반 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우주적 푸가의 가능성

하지만 세이건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 푸가(Fugue)는 여러 개의 성부가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른 시점에서 연주하며 복잡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악 형식이다.

만약 우주 곳곳에서 서로 다른 화학적 기반을 가진 생명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해왔다면? 규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체, 메탄 바다에서 헤엄치는 생명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의 생명체들이 각자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다면?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상상도. 타이탄에는 차가운 메탄 성분의 액체가 표면 곳곳에 고여 있으며, 수심이 300m 이상인 바다도 있다고 최근 우주과학계는 밝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상상도. 타이탄에는 차가운 메탄 성분의 액체가 표면 곳곳에 고여 있으며, 수심이 300m 이상인 바다도 있다고 최근 우주과학계는 밝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확률과 가능성의 게임

세이건이 제기하는 이 질문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그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외계 생명체 존재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드넓은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우주의 규모를 고려할 때 생명이 지구에만 존재할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천문학이 발견한 사실들은 세이건의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2천조 개의 별이 존재하며, 인간만이 유일하게 기술 문명으로 존재할 확률은 100억조 분의 1보다 적다는 현대의 연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한다.

철학적 질문의 깊이

하지만 세이건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외계인이 있을까?"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더 깊은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만약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변할까?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주적 관점을 갖게 만든다. 세이건은 "끝을 단정할 수 없는 광활한 시공간에 지구 생명체 외에 외계인 존재가 분명 있다고 믿었다"며, 이러한 믿음이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과학적 추론에 기반한 것임을 강조했다.

상상력이 이끄는 탐구

세이건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상상력은 새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창의적 사고가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구는 과학적 엄밀성과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지구의 생명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생명의 실험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우주적 푸가의 한 성부에 불과한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설렘도 느끼게 된다.

과학적 탐구의 정당성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구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당한 연구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SETI)의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지적 생명체 탐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타당성을 제시했다.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류의 메시지를 우주로 보내는 이 시도는 "인간이 외계 생명체와 소통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구체화한 첫 번째 시도"였다.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레코드 [그림출처 : 위키백과]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레코드 [그림출처 : 위키백과]

마무리: 우주적 관점의 선물

『코스모스』 2장을 읽으며 우리는 세이건이 선사하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주적 관점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야를 무한히 넓혀주는 관점 말이다.

외계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떠나, 그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겸손하고 더 열린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연주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장엄한 생명의 푸가 중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세이건이 40여 년 전에 던진 이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외계 행성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질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언젠가 그 우주적 푸가의 다른 성부들을 듣게 될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인류는 정말로 우주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 칼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