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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을까? '총균쇠'의 시작, 얄리의 질문을 통해 본 인류의 역사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프롤로그

by 아너스88 2025. 9. 1.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표지

 

1972년 7월, 뉴기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 한 젊은 생물학자가 해변을 걷고 있었다. 새를 연구하러 온 재레드 다이아몬드였다. 그때 현지 정치인 얄리를 만났고, 그들의 만남은 인류 역사를 다시 쓰는 거대한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그들의 만남에서 시작된 한 마디 질문이 훗날 인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거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얄리라는 이름의 뉴기니인 사이에 오간 그 대화는 단순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인류 문명 전체의 수수께끼가 담겨 있었다.

"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개발해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우리 흑인에게는 우리만의 화물이 거의 없는 이유가무엇일까요? "

 

얄리의 이 단순한 질문이 25년이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얄리가 말한 '화물(cargo)'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발명품이나 공산품에 대해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서구 문명이 가져온 모든 것들을 상징했다. 강철 도구, 성냥, 의약품부터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까지... 이 모든 것들이 '화물'이었다.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1972년 당시 뉴기니 사람들은 여전히 석기 시대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서구인들은 달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엄청난 격차를 보면서 얄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가?

현대 세계 불평등의 뿌리를 찾아서

얄리의 질문을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다이아몬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따라서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다시 고쳐 쓸 수 있다. 왜 부와 힘이 하필이면 지금처럼 배분되었을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학살하고 예속하고 절멸시킨 쪽이 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역사의 흐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까? 왜 반대로 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을 정복하지 않았을까? 왜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들을 노예로 삼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종주의적 설명이 도사리고 있다. 마치 어떤 민족은 태생적으로 우월하고, 어떤 민족은 열등하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관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시장에 모인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의 모습
시장에 모인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의 모습 [그림출처 : 나무위키]

인종 차별적 대답은 틀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한다. "유럽인들이 더 똑똑해서"라고.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답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친구였던 뉴기니인 '얄리'가 던진 질문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25년간의 연구 끝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뉴기니 원주민들을 보라. 그들은 수천 종의 동식물을 구별하고, 복잡한 사회 관계를 유지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놀라운 지혜를 갖고 있다. 만약 현대 도시인이 뉴기니 정글에 떨어진다면? 아마 일주일도 못 버틸 것이다.

원시적인 부족 사회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문명 사회의 인간과 비교해 유전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지혜와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지리적 행운이 만든 차이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조건'이 지난 13,000년간 전 세계인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추적한다.

상상해보자. 1만 3천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가 농업을 시작할 무렵을. 어떤 지역은 농사짓기 좋은 야생 식물이 많았고, 어떤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곳에는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있었고, 어떤 곳에는 없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특히 운이 좋았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비슷한 기후대를 따라 농작물과 기술이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어 기후대가 달라 전파가 어려웠다.

총, 균, 쇠의 등장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인구가 늘어났다. 인구가 늘면 분업이 생긴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대장장이, 군인, 발명가가 나타났다. 이들이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기술은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렸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병균이었다. 가축과 함께 한 역사가 없는 원주민들은 역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총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천연두와 홍역이었다. 원주민 인구의 90% 이상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들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지리적 행운이 가져다준 총과 균과 쇠 때문이었다.

1533년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 잉카제국 침공 [그림 출처 : 경향신문 2010.11.14]

프롤로그가 던지는 메시지

『총균쇠』의 프롤로그는 단순히 책의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에 대한 도전이다. 얄리의 질문은 뉴기니인과 유럽 백인의 대조적인 생활 양식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 문제를 확대시키면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더 큰 규모의 현저한 불균형도 내포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있다. 이런 차이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혹시 "그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다이아몬드는 말한다. 각 대륙의 사람들이 경험한 장기간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까닭은 그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그렇다. 총균쇠의 핵심 메세지는 명확하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

얄리의 질문은 과거에 대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현재의 불평등이 환경적 우연의 결과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우리는 겸손해져야 한다. 현재 부유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개인적 우수성 때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된 지리적 행운의 결과다.

둘째,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현재의 불평등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기술과 지식을 나누고, 함께 발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서구 문명만이 유일한 발전 모델은 아니다. 각 문화는 나름의 가치와 지혜를 갖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본인부터가 문화상대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사람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1972년 뉴기니 해변에서 시작된 대화는 인류 역사에 대한 거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얄리의 단순한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

『총균쇠』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로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한가? 현재의 불평등은 정당한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

1964년부터 뉴기니를 주 무대로 조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는 조류학자였던 다이아몬드가 인류 문명 전체를 조망하는 거대한 저작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 질문 때문이었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질문이 가장 깊은 통찰을 가져온다.

우리도 얄리처럼 질문해보자. 왜 세상은 이렇게 불평등한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총균쇠』 프롤로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영원한 숙제다.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함께 있는 사진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함께 있는 사진 [그림 출처 : 크리스찬리더, 2025년 5월 1일]


참고문헌: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강주헌 번역, 김영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