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나를 다시금 돌아볼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틈틈히 예전에 나에게 영감을 준 책들을 다시금 뒤적이게 된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이 코스모스이다. 나에게 누군가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한 번쯤은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용기. 의심하고, 질문하며, 사랑하자고. 했던 그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코스모스에 대한 생각을 연재하고자 한다. 먼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 한국어판 서문 '칼 세이건의 빈 의자'에 대한 내용부터 정리해 보자.
별이 된 과학자의 자리
한적한 서재 한 켠, 달빛만이 비추는 창가에 놓인 빈 의자 하나.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그 자리는 이제 공허함만 남았다. 그 의자에 앉아 우주의 신비를 이야기하던 목소리는 이제 스스로 별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2010년 칼 세이건『코스모스』 특별판의 한국어판 서문 '칼 세이건의 빈 의자'는 단순한 추모글이 아니라, 한 시대가 잃어버린 지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서문을 쓴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의 소울메이트이자 동료 과학자로, 『코스모스』의 기획과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대본 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녀에게 세이건의 부재는 단지 지적 동반자의 상실이 아닌, 영혼의 반쪽이 사라진 공허함이었다.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꿈꾸던 미래, 새벽까지 이어지던 우주에 대한 대화,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던 따뜻한 시선—그 모든 것이 담겨 있던 의자는 이제 비어있지만, 그 존재감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우주 속의 우리, 우리 속의 우주
홍승수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코스모스』는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다. 코스모스(Cosmos)라는 단어 자체가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카오스(Chaos)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홍승수 교수는 우주(universe)와 코스모스(cosmos)를 구분하여 번역했다.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는 또한.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라고 말하며 우주의 본질적인 연결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은 경이로움과 겸손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세이건의 빈 의자를 생각하며 우주를 바라보면, 그가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 속에서 찰나의 순간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그 찰나 속에 담긴 영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무지의 바다와 지식의 섬
세이건의 사상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지식에 대한 겸손함이다. 그는 『코스모스』에서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라는 토마스 헉슬리의 표현을 인용하며 겸손함을 표현했다.
'칼 세이건의 빈 의자'는 바로 이 지식의 섬을 확장해 나가던 위대한 안내자의 부재를 상징한다. 그가 없는 지금, 우리는 그의 섬을 더욱 넓혀갈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고독한 창백한 푸른 점
세이건이 남긴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며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사진에 대한 묘사다. 『코스모스』의 연장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이 문장들을 떠올릴 때마다, 세이건의 빈 의자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인간의 경험을 이토록 아름답고 가슴 저리게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우리는 잃었다.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으로 남아, 우리에게 인류의 연대와 공존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시간의 강을 건너다
『코스모스』를 통해 우주의 역사를 '코스믹 캘린더'라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할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하면, 빅뱅은 1월 1일 자정에 일어났고, 인류의 출현은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6초, 기록된 인류 역사는 겨우 마지막 10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시간의 강을 건너는 여정에서 세이건은 우리의 안내자였다. 그는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탐험가들"이라고 했다. 그가 없는 지금, 그 빈 의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가 보여준 경이로움을 기억하며,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여정을 멈추지 말라.'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어서
세이건은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학자였다. 그는 『코스모스』에서 과학적 사실뿐 아니라 철학적 성찰, 문학적 표현, 역사적 맥락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을 보여준다.
'칼 세이건의 빈 의자'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자의 부재가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 이성과 감성, 분석과 직관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 지성의 빈자리이다.
앤 드루얀, 비어있지만 채워지는 의자
앤 드루얀은 세이건의 빈자리를 지키며 그의 유산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코스모스』의 모든 기획에 참여했던 공동 작업자였으며,
칼 세이건이 떠난 후, 그의 아내 앤 드루얀은 세이건의 열정과 비전을 이어가기 위해 그들이 함께 꿈꾸던 프로젝트들을 계속해왔다. 2014년에는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라는 후속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2020년에는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출간하며 세이건의 정신을 계승했다. 그녀에게 있어 빈 의자는 슬픔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빈 의자'는 비어 있지만, 그 자리에 앉아야 할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와 사상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세이건이 남긴 공백은 단순히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후대가 채워나가야 할 도전이자 책임인 것이다.
『코스모스』의 첫 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모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이건의 영향력도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의 빈 의자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건넨다—우주를 탐험하라, 지식을 추구하라, 서로를 아끼라, 그리고 이 작은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여기라고.
'빈 의자'는 슬픔의 상징이면서도, 우리 모두가 세이건의 정신을 이어받아 앉아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고, 세상에 대해 질문하며, 우주적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세이건의 정신은 그 의자를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나에게 코스모스란
코스모스는 내게 단순한 천문학 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나침반이었다. 그것은 내게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의심과 탐구의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지금 다시 코스모스를 읽으며, 나는 세이건의 빈 의자가 던지는 메시지를 떠올린다. 거대한 우주 속 작은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 우주를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앞으로 코스모스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며, 세이건이 남긴 지적 유산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의 빈 의자는 비어 있지만, 그 의자가 상징하는 과학적 탐구와 경이로움의 정신은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읽으면 정리한 책 :
- 칼 세이건, 『코스모스』(홍승수 번역, 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김명남 번역, 사이언스북스, 2020)